박주양
朴朱陽1898. 11. 12 ~ 1998. 8.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송화군 봉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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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8년 11월 12일 황해도 송화군(松禾郡) 연방면(蓮芳面) 백화리(白華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7일 송화군 봉래면(蓬萊面) 수교리(水橋里)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황해도 송화군으로의 만세운동 전파는 천도교인들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 송화군 천도교구장 손두순(孫斗淳)은 전국적인 만세운동 계획을 전달받았고 3월 12일 송화면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3월 12일 당일을 주도한 천도교(天道敎)는 각 지역의 천도교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함으로써 만세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자 하였다. 신천군(信川郡) 천도교구장 최흥숙(崔興淑)과 안악군(安岳郡) 대교구장 김승주(金承周)로부터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 계획을 전달받았다. 송화면을 비롯해 상리면(上里面)과 진풍면(眞風面)에서 일제히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적극적으로 참여한 봉래면 수교리 거주 기독교인들은 후속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때 장촌교회의 장로 최홍규(崔弘圭), 장양면(長陽面) 평촌교회의 최승기(崔承基), 장양면의 한철수(韓哲洙)와 한기봉(韓基鳳)은 종산면(鍾山面), 재령읍(載寧邑), 그리고 신천군 궁흥면(弓興面)의 기독교 인사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7일 오후 1시 수교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신천군 궁흥면에서 500~600여 명의 시위대가 태극기를 들고 수교 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연방면과 장양면 사람들도 시위에 합세하였다. 이웃 주민들과 함께 수교 장터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평화롭게 행진하였다. 장터에 모여든 사람들도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일제 군경은 무력으로 진압을 시도하였으며, 소방용 수차를 동원해서 물감을 뿌리면서 만세시위에 참여한 인사를 색출하고 연행하였다. 일제 군경의 체포를 피해서 피신하였다가 1920년 3월에 붙잡혔다. 1920년 5월 18일 해주지방법원 송화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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