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박종희

朴宗禧

1854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종희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남 평원(平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관련 사건

  • · 평원군 공평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5)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공평면(公平面) 신화리(新和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66세로 1854년생으로 추정된다. 그해 3월 7일 공평면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중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평원군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6일 순안면(順安面)에서 처음 일어났으며, 3월 말까지 크고 작은 시위가 계속되었다. 평원군은 순안(順安)·숙천(肅川)·영유(永柔)의 3개 지역을 합하여 하나의 군으로 된 지역이었다. 따라서 만세운동 역시 3개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평원군 순안면에서 1919년 3월 6일 오후 4시에 첫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약 500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남창리(南昌里)에 위치한 순안경찰서로 향하였다. 이 만세시위로 17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3월 7일에는 영유면(永柔面)에서 군내 가장 큰 규모의 만세시위가 읍내에서 5리 정도 떨어진 어파리(漁波里) 역전촌(驛前村)에서 일어났다.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밤 9시에 횃불을 들고 철도 터널 어귀의 산언덕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같은 날 신화리에서 마을 청년 수십 명이 모여서 ‘독립만세’를 부르자 이때 참가하여 만세를 같이 부르고 해산하였다. 숙천면(肅川面)에서는 3월 9일 기독교인들과 3월 11일 천도교인들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계속 이어졌다. 3월 29일에는 서해면(西海面) 사산리(蛇山里)에서 학생들의 소규모 시위가 있었다. 적극적으로 참가한 공평면 신화리 만세시위도 이러한 군내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과 연속선상에 있었다. 평원군의 각 지역에서 만세시위가 사실상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자, 주도자와 적극 가담자 등을 체포하기 위해 평양(平壤)에 주둔하던 일본군의 증파가 이루어졌다. 파견된 일본군은 평화적으로 펼쳐진 만세시위임에도 불구하고 총검을 사용하며 무자비하게 탄압하였고, 적극적인 검거 작전을 전개하였다. 결국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가담한 이유로 붙잡혀 모진 조사를 거친 후 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평양지방법원에서 열린 제1심 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즉각 불복하고 “파리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이 논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 민족의 독립을 희망하였으며, 조선인으로서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만세시위를 한 것은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에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라며 항소하였지만, 그해 5월 3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불복하고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7월 5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