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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천

朴正千

1868. 11. 1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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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정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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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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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1) 1868년 11월 11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용흥리(龍興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홍성군 금마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1일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시작되었다.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들은 금마면 부평리(富平里) 민영갑(閔泳甲)은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논의하여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 자택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공연이 열리는 4월 1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민영갑 등은 연극공연의 관객으로 앉아 있다가 밤 8시경부터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의 동참을 호소하며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이에 20~30여 명의 주민이 만세시위에 호응하여 동참하였으나,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다. 4월 4일 금마면과 인근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를 올리면서 전개된 만세시위가 연이어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본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명이 사망하고 주도자 5명이 붙잡혔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만세시위를 특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붙잡혀 조사를 받았고, 결국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겼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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