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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찬

朴廷瓚

1867 ~ 1922.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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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정찬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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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淸道)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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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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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운문면(雲門面) 대천동(大川洞, 현 경북 청도군 운문면 대천리)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52세로 1867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운문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청도군 운문면 만세운동을 가장 먼저 주도한 인물은 운문면에 위치한 사립 문명학교(文明學校) 졸업생인 김상구(金相久)와 김종태(金鍾台)였다. 두 사람은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있었던 고종의 국장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직접 만세운동을 목격한 뒤 청도로 돌아왔다. 3월 10일 두 사람은 문명학교 교장 김우곤(金禹坤)의 집에 모인 청년들에게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함께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하였다. 3월 15일 신원동(新院洞)의 손기현(孫琪鉉)과 김재화(金在華)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는 벽보 20매를 작성하여 운문면 주요 장소에 부착하였다. 3월 17일 손기현이 동네 청년들에게 『매일신보』에 실린 만세운동 기사들을 보여주면서 운문면에서 만세시위를 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3월 18일 시위를 주도하여 계획하고 있던 김진효(金鎭孝)·김종태·김종식(金鐘軾)·김상구·손한조(孫漢祚)·강재식(姜在植)·홍용팔(洪龍八) 등이 벽보를 붙인 인물로 지목되어 대천동 운문주재소에 소환되었다. 이들은 주재소에서 일제 경찰의 조사를 받고 풀려난 뒤, 당장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결의하고 곧장 운문면사무소로 향하였다. 3월 18일 만세시위 계획에 찬성하여 참여하였다. 깃발을 들고 김진효의 선창에 따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 주변을 행진하였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태극기와 선언서를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데 앞장섰다.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장 이영호(李永浩)의 집 앞으로 향하였다. 이들과 함께 면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저녁 늦게까지 운문면 일대를 행진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19일 저녁 다시 만세시위가 일어났고,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강경하게 저지하였다. 이때 약 300명의 시위대와 함께 물리력으로 일제 경찰의 저지를 막아냈다. 그러나 3월 20일 만세시위 주도자와 적극 가담자를 체포하기 위해 대구의 일본군 헌병부대와 청도경찰서에서 군대와 경찰을 파견하였고, 이들의 대대적인 검속으로 붙잡히고 말았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았다. 즉각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고, 그 해 7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이 취소되고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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