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림
朴正林188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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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고산면(高山面) 신풍리(新豊里) 출신이다. 1919년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36세로 1884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농업에 종사하면서 정평군 고산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함남에는 주로 천도교와 개신교 인사들에 의해서 조선독립선언서와 독립만세시위 소식이 전달되었다. 정평군에서는 1919년 3월 2일 밤 부내면(府內面) 읍내에 조선독립선언서가 배포되었다. 3월 7일 부내면에서 김순연(金順淵)·원종집(元鍾潗)·노용빈(盧龍斌)을 비롯해서 주로 개신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고산면 만세운동은 3월 16일 풍송리 헌병주재소에서 최병헌(崔炳憲)·김기룡(金基龍) 등이 주도하여 일어났다. 이 만세운동은 3월 17일에도 지속되었는데, 이 때 시위에 참여하였다. 오전 10시 무렵 덕흥리(德興里)·흥봉리(興峰里) 주민 700여 명이 신풍리에 모였다. 깃발을 든 시위대와 함께 북을 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신풍리에 사는 진택룡(陳澤龍)·송진헌(宋進憲)·이학린(李學璘)·고하원(高河源) 등은 덕흥리와 흥봉리 주민을 이끌고 고산면사무소로 이동하였다. 고산면사무소로 진입해서 송진헌·이용각(李龍珏)과 함께 면회계원 강봉조(姜鳳朝)를 구타하였다. 진택룡은 면서기 박계환(朴桂煥)을 구타하였다. 면장 이봉주(李琫胄)를 강제로 시위대에 합류하게 한 후, 풍송리 헌병주재소로 향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한편 풍서리(豊西里) 서당에서 훈장으로 있던 정구갑(鄭龜甲)은 동네 주민 400여 명을 이끌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풍송리 헌병주재소로 향하였다.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강경하게 해산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시위를 주도한 인사들을 연행하였다. 만세시위에 참여해서 면회계원을 폭행하고 면사무소 사무를 방해한 혐의로 일제 군경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7월 1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8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23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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