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
朴在永1878. 5. 2 ~ 1944. 10.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78년 5월 2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운문면(雲門面) 대천동(大川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운문면 만세운동은 신원동(新院洞)에 위치한 사립 문명학교(文明學校) 졸업생 김상구(金相久)와 김종태(金鍾台)가 고종(高宗) 인산(因山)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만세운동을 직접 보고 돌아온 후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3월 10일 문명학교 교장 김우곤(金禹坤)의 집에서 동네 청년들에게 직접 목격한 만세시위를 설명하였다. 이날 모임을 계기로 3월 15일 신원동 출신 손기현(孫琪鉉)·김재화金(在華)는 “우리 동포 형제는 (중략) 삼천리 강토를 탈환하라 (중략) 대한독립만세!”라는 내용의 벽보를 작성하고, 운문면 곳곳에 20매를 부착하였다. 이 벽보 사건으로 3월 18일 김진효(金鎭孝)·김종태·김종식(金鐘軾)·김상구·손한조(孫漢祚)·강재식(姜在植)·홍용팔(洪龍八)·홍해성(洪海性) 등이 운문주재소에 소환당하였다. 조사를 마친 후 대천리에서 점심을 먹던 이들은 홍해성·김진효·김종태 등의 제의에 따라 당일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뜻을 모았다. 먼저 운문면사무소로 향한 이들은 김종태의 명주 수건에 ‘대(大)’자를 작성한 후 면서기들에게 ‘한(韓)’·‘독(獨)’·‘립(立)’·‘만(萬)’의 네 글자를 쓰게 하고 마지막 ‘세(歲)’를 써서 깃발을 완성하였고, 깃발을 높이 들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면장 이영호(李永浩)의 집 앞에서 시위를 계속하였고, 이를 제지하는 면장을 뿌리치고 마을로 시위를 이어갔다. 이때 집 앞에 있다가 이들과 합류하였고, 운문주재소까지 행진하면서 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쳤다. 3월 20일 대구 일본군 헌병부대와 청도경찰서에서 헌병과 경찰이 파견되었고,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모진 심문을 거친 후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4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7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다시 받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