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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식

朴載植

1889. 5. 20 ~ 1960.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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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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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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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9년 5월 20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해면(嶺海面) 원구동(元邱洞)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농업에 종사하면서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영덕군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영해면의 만세운동은 3월 중순부터 북장로교 교회 조사(助事)인 김세영(金世榮)의 주도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영덕군에서도 만세시위를 펼치기 위해 귀향한 김세영은 평소 친분이 많았던 구세군 참위(參尉) 권태원(權泰源)과 만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고, 군내 여러 지역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연락을 취하였다. 권태원은 병곡면(柄谷面) 송천동(松川洞)교회의 조사 정규하(丁奎河)와 접촉하였고, 김혁동(金赫東)을 영덕의 강우근(姜佑根)·김우일(金愚一)에게 보냈다. 또 김중명(金重命)을 지품면(知品面)의 김태을(金太乙)과 황장동(黃膓洞)의 주명우(朱明宇)와 만나도록 하였다. 권태원은 일가인 권씨 문중도 방문하여 김세영의 계획을 알렸고, 권상호(權相鎬)·남효직(南孝直) 등을 만나 유림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장날인 3월 18일 정오경에 정규하·남효직(南孝直) 등이 사전에 준비한 태극기를 가지고 영해면 성내동(城內洞)시장에 도착하였다. 오후 1시경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작된 만세시위는 밤을 넘겨 다음날까지 계속되었고, 대구와 포항에서 시위 진압을 위한 일본군 추가 병력이 투입되면서 종료되었다. 한편, 영해의 만세시위는 3월 18일 오후 2시경 병곡면으로 퍼져나갔고, 다음날에는 창수면(蒼水面)에서도 이어졌다. 3월 18일 성내동시장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될 때 독립만세에 참여하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고 동참하였으며,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시위 군중들과 함께 관공서를 습격하여 기물을 파괴하고 훼손하였으며, 일제 경찰을 구타할 때도 참여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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