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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곤

朴在坤

1878. 5. 1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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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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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이천(伊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이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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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878년 5월 13일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이천면(伊川面) 남좌리(南佐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이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이천군 이천면 탑리(塔里)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이후, 4월 5일 같은 마을에 사는 이원모(李元模)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하였다. 다음 날인 6일 이천면 탑리에서 장이 서는 것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하고, 시위 때 사용할 태극기 2개를 직접 만들면서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6일 이원모와 함께 태극기를 숨기고 이웃 마을에 위치한 탑리시장으로 향하였다. 오후 4시경 장꾼과 주민들로 붐비는 장터에서 이원모와 함께 태극기를 꺼내 높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두 사람의 외침에 장터에 있던 장꾼과 주민들도 호응하면서 만세운동이 펼쳐지게 되었다. 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제 경찰은 시위 현장에 급파되어 시위대를 해산하는 한편, 주도자와 적극 참여자를 검거하고 태극기도 몰수하였다. 이때 이원모와 함께 시위 주도자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모진 조사를 받은 후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즉각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그 해 5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불복하고 “나의 행위가 조선 민족의 정의(正義)와 인도(人道)에 근거한 것으로 범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유죄 판결은 부당하다”고 항변하면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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