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선
朴慈善1880. 10. 2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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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1880년 10월 27일 서울 종로구(鐘路區) 와룡동(臥龍洞)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43세로, 종로구 안국동(安國洞)에서 거주하였다. 1920년 2월 28일 안국동 자택에서 박기영(朴琪永)을 만나 경성부인성서학원(京城婦人聖書學院) 교사 이동욱(李東旭)이 작성한 「대한독립 1주년 기념 축하 경고문(이하 「경고문」)」 수백 장을 건네받았다. 「경고문」의 내용은 3·1운동 1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독립선언의 취지를 상기시키는 것과 함께 독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학생은 동맹 휴교, 상가는 폐점하여 전국적인 만세운동을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경고문」은 신문 포대 3개로 나누어 포장되어 있었다. 박기영은 이 「경고문」을 대전·대구·마산으로 배포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여비 20원을 건네주었다. 당일 바로 「경고문」을 치마폭에 숨겨 나와 대전으로 가서 역 앞 조선여관에서 대전역 직원 이길용(李吉用)을 만나 「경고문」 1포대를 전달하였다. 이어서 대구 남성정(南城町, 현 대구광역시 약전골목)의 최일문(崔一文)에게 갔으나 부재중이어서 만나지 못하였다. 다음 날 29일 마산으로 가서 상남동(上南洞)의 한 운송점 사무실에서 팽동주(彭東柱)를 만나 「경고문」 1포대를 전달하였다. 그리고 만나지 못한 대구의 최일문에게 선언문을 송부하도록 부탁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길용은 「경고문」을 대전에 거주하는 한부(韓富)와 최성운(崔聖雲)에게 전달하여 대전 시내에 배부하도록 하였으며, 팽동주는 마산 시내에 수십 장을 살포하였다. 그러나 「경고문」을 배포한 직후인 2월 29일 주도자들이 검거되면서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20년 12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출판법,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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