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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규

朴潤奎

1888. 3. 9 ~ 1946.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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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윤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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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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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4) 1888년 3월 9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지품면(知品面) 송천동(松川洞)에서 태어났다. 북장로파(北長老派) 기독교인이었다. 1919년 영양군(英陽郡) 석보면(石保面) 포산동(葡山洞)에 거주하며 영덕군 영덕면(盈德面) 남석동(南石洞)시장에서 거행된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영덕면 남석동 만세운동은 강우근(姜佑根)과 이승구(李承玖)를 중심으로 영덕군 영덕면 금호동(錦湖洞)·오포동(烏浦洞)·화수동(華水洞)과 남정면(南亭面) 남정동(南亭洞), 석보면 포산동의 북장로파 교도들이 연합하여 전개한 것이다.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한 강우근은 영덕면 금호동 예수교 북장로파 조사(助師)로 『매일신보』 기사를 통하여 전국에 만세운동이 일어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덕면 읍내의 교회와 인근 3개 교회의 감독이었던 강우근은 교회 관계자들을 만나 만세운동을 권유하였다. 강우근의 설득에 김암우金(岩佑)·이정규(李正奎)·강대열(姜大)烈·김용하(金龍河) 등이 동참하게 되었고, 1919년 3월 18일 영덕면 읍내 장날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이때, 교회 신도와 소문을 통하여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고, 영덕군에서도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같은 교회 신도인 이승구에게 전하였다. 이승구는 포산동 북장로파 신도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고, 3월 18일을 거사일로 예정하고 사람들을 규합하여 김혁동(金爀東)·김태을(金太乙)·안석종(安石鐘)·최기영(崔起榮) 등이 동참하게 되었다. 또한 같은 북장로파 신도였던 조병두(趙秉斗)를 길에서 만나 설득하여, 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후 강우근과 이승구는 서로의 만세운동 계획을 알게 되어 힘을 합치기로 결정하고, 3월 18일 남석동시장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거사 당일 강우근과 이승구 중심으로 교인 50여 명이 장터로 모였을 때, 함께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오후 2시 30분경 강우근이 장터 한 가운데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만세소리에 시장에 있던 수백 명이 호응하며 ‘독립만세’를 함께 불렀다. 만세운동 소리에 일제 경찰이 즉시 출동하였고, 총칼로 군중들을 위협하며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때 참여자 20여 명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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