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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화

朴士化

1880 ~ 1912.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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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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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羅州)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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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심남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독립장(1998)

관련 사건

  • · 심남일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98)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지량면(知良面) 기촌리(基村里)에서 태어났다. 자료에 따르면 1910년 당시 29세였던 것으로 보아 1880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박사과(朴士過)·박사홍(朴士弘)을 사용하였다. 1908년 2월 전라남도 함평(咸平)에서 의병을 일으킨 심남일(沈南一) 의병부대에 참가하여 중군장(中軍將)으로 활약하였다. 심남일 의병부대는 남평(南平)·능주(綾州)·영암(靈巖)·나주·장흥(長興)·해남(海南) 등을 무대로 활동하였다. 중군장으로서 1908년 3월 전라남도 강진(康津)에서 일본군 수백 명과 온종일 격전을 벌여 일본군 수십 명을 처단하고 무기를 노획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능주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며, 1909년 가을까지 나주·영산포(榮山浦)·영암 등지에서 150여 명의 군사를 지휘하며 활동하였다. 뿐만 아니라 군자금 모집 활동과 친일 밀정 등을 처단하였다.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南韓大討伐作戰)’으로 호남 지역 의병들에 대한 공세로 많은 의병들이 체포된 상황에서, 부하들의 구명을 위해 자수를 하고 다음 날 탈출을 시도하는 등 지속적으로 투쟁하다가 일본군에 붙잡혔다. 1910년 5월 1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내란 및 살인으로 사형을 받고, 1912년 7월 5일 광주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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