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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석

朴奉石

1885 ~ 1910.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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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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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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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독립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90)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도천면(陶泉面) 수박등리(水朴嶝里)에서 태어났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0년 당시 26세였던 것으로 미루어, 1885년생으로 추정된다. 성장 과정이나 가계와 관련한 사항은 알려진 바 없다. 1908년 11월 13일 안규홍(安圭洪) 의병부대에 들어가 포군(砲軍)의 직책을 맡았다. 당시 안규홍 의병부대는 농민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보성(寶城)과 순천(順天) 지역에서 항쟁을 전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 부대에서 50여 명의 의병을 통솔하여 보성·장흥(長興)·순천 등지에서 일본수비대 및 헌병대와 격전을 벌였으며, 일제의 관헌을 습격하고 친일세력과 토호를 처단하였다. 1909년 5월 18일 부하 7명과 보성군 율어면栗(於面) 유치柳(峙)리 동복(同福) 시장에서 일본수비대 상등병 1명, 병졸 1명, 한국인 통역 1명을 처단하고 총 2정과 군도를 노획하였다. 일제의 의병 초토화 작전인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南韓大討伐作戰)’ 기간인 1909년 9월 24일 일본군에 붙잡혔다. 1910년 2월 7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폭동 및 살인·강도로 교수형을 받았다.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대구형무소에서 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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