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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동

朴玉童

1900. 10. 5 ~ 1949.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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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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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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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0년 10월 5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죽백리(竹栢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陽城面)에서 시작된 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부터 4월 2일까지 안성군 원곡면 외가천리(外加川里)와 양성리(陽城里) 일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외가천리에 위치한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불렀고, 이 시위는 3월 31일까지 매일 이어졌다. 4월 1일 밤부터 시위가 확대되어 원곡면과 양성면 주민이 합류하여 그 규모가 2,000여 명에 달하였다. 이때부터 적극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양성면 동항리(洞恒里)에 위치한 양성경찰관주재소에 불을 지르고, 우편소와 면사무소의 기물과 서류를 파괴하였다. 이후 원곡면사무소에 가서 숙직실과 서류, 물품에 불을 질렀다. 시위 군중을 독려하여 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함께 경찰관주재소로 이동하였다. 경찰관주재소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돌을 던지며 기물을 부수고 주재소 사무실과 순사 기숙사 건물·문서·기물에 불을 질렀다. 이어 양성우편소로 가서 시설물·전화기·서류 등을 파괴하고, 전화선을 절단한 뒤 전주 3개를 넘어뜨렸다. 이후에는 일본인 상인 집을 공격하여 건물과 물품을 파괴하거나 불태웠다. 이러한 격렬한 시위에 나섰다가 결국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가혹한 조사를 받고 기소되어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 가택 침입, 건조물 및 기물 훼손, 방화, 강도, 전신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구류 일수 중 500일을 본형에 산입)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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