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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양

朴吉陽

1894. 10. 25 ~ 1928.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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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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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강화(江華)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강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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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고려공산청년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조선공산당 제1차 검거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4년 10월 25일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부내면(府內面, 현 강화읍) 관청리(官廳里)에서 대한제국 시기 참위(參尉)를 지낸 박제수(朴齊秀)의 아들로 태어났다. 박의(朴宜)라는 이명이 있다. 1908년 강화도에서 사립 보창학교(普昌學校)를 졸업하고, 1910년 상경하여 상동청년학원(尙洞靑年學院) 중등과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에는 3년간 강화도 소재 사립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 후 2년간 서울 광정상회(廣井商會)에서 근무하였으며, 잡화상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1년 김환일(金還一) 외 3명과 함께 경기도와 남부지방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그 해 10월 30일 종로경찰서 형사에게 붙잡혔다. 이로 인해 같은 해 12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3년 6월 15일 풀려났다. 이후 시대일보(時代日報) 강화지국장, 강화중앙청년회 교무부원 등으로 활동하는 한편 사회주의 사상단체인 화요회(火曜會)에 참여하였다. 1925년 2월 강화도 대표로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으로 참여하고, 같은 해 4월에는 동아일보 강화도지국 기자로 서울에서 개최된 전조선기자대회에 참석하였다. 1925년 4월 18일 동지들과 함께 훈정동(薰井洞) 박헌영(朴憲永)의 집에서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를 조직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는 일제로부터의 독립과 사유재산제도 타파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주의 비밀결사였다. 그러나 1925년 11월 조선공산당 제1차 검거 사건으로 붙잡혀, 1927년 3월 31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 예심에 회부되었다. 재판 기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폐결핵에 걸려 보석을 신청하였다. 1928년 1월 18일 보석 허가가 되었으나, 보증금 문제로 즉시 풀려나지 못하고 이튿날인 1월 19일 사망하였다. 시신은 노농총동맹(勞農總同盟) 회관에 안치되어 원래 사회단체연합장으로 치러질 계획이었으나, 일제 경찰의 금지로 비공식 가족장으로 진행되었다. 장례 후 유해는 수철리(水鐵里, 현 성동구 금호동)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고향인 강화로 이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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