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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석

朴雲碩

1896. 1. 12 ~ 192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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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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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용천(龍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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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보합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보합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6년 1월 12일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읍동면(邑東面) 사악동(沙岳洞)에서 박국정(朴國禎)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동생인 박운죽(朴雲竹)과 함께 보합단에서 활동하였다. 1920년 3월 대한청년결사대(大韓靑年決死隊)가 김동식(金東植)의 주도로 결성되었다. 같은 해 5월 김중량(金仲亮)을 단장으로 추대하여 대한독립보합단(大韓獨立普合團, 이하 보합단)으로 조직을 정비하였다. 보합단은 평북 철산(鐵山)·용천을 중심으로 일제 경찰과 친일파를 처단하는 동시에, 독립 운동을 선전하고 부유층을 상대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협력을 모색하면서 서울에서 일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1920년 6월 중국인 왕덕삼(王德三)으로부터 화승총과 화약을 입수하여 독립운동에 사용하고자 하였다. 그러던 중 같은 해 10월 28일 박초식(朴楚植)의 권유로 보합단에 가입하였다. 그날 보합단원이자 동생인 박운죽이 김성일(金成一)에게 맡겨두었던 군수품을 찾아 보관하였다. 같은 해 11~12월 평북 용천군 일대에서 박초식·박운죽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펼치다가 군수품을 보관해주었던 보합단원 김성일·김유성(金有成)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21년 4월 25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총포화약취체령과 폭발물취체벌칙 위반으로 유죄를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다. 평양형무소에서 7년간 옥고를 치르고 풀려났으나, 1928년 옥중에서 생긴 병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구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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