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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정

朴承鼎

1885 ~ 19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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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승정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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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삼수(三水)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삼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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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함경남도 삼수군(三水郡) 별동면(別東面) 광생리(光生里)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35세로, 1885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농업에 종사하며 3월 15일 삼수군 삼남면(三南面) 중평장리(中坪場里)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려고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일본 헌병에게 정보가 발각되어 거사 직전에 붙잡혔다. 1919년 3월 10일경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이 함경남도 삼수군에 전해졌다. 천도교 삼수교구장 조완오(趙完五)는 평소 일본의 한반도 강점과 대한(對韓) 시책의 편협성을 비판하는 생각을 품고 있다가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3월 13일 조완숙(趙完淑)·조완기(趙完基)·조완규(趙完奎) 등 친척과 노형국盧(亨國)·조완수(趙完洙)·김병윤金(炳允) 등을 집에 불러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세운동에 대한 소식을 전하였다. 이들은 3월 15일 밤 중평장리에서 만세시위를 감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 자리에 함께 초대되어 조완오의 뜻에 찬성하고, 죽기를 맹세하며 일제와 싸울 것을 다짐하였다. 그리고 시위에 쓸 태극기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거사일인 3월 15일 저녁이 되자, 조완오 등 주도자들과 함께 태극기를 소지하고 중평장리로 갔다. 하지만 천도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만세를 추진한다는 정보를 알게 된 중평장헌병주재소 일본 헌병들에 의해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연락을 받고 만세를 부르기 위해 모여든 300여 명의 군중도 강제로 해산 당하였다. 일본 군경의 모진 조사를 받고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를 제기하여 그 해 7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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