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박원국

朴元國

1899. 8. 14 ~ 1933. 12. 28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원국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남 강동(江東)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강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9년 8월 14일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 원탄면(元灘面) 봉도리(鳳島里)에서 태어났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향인 강동군과 대동군(大同郡) 일대를 중심으로 박도제(朴度濟)·김재진(金載珍)과 활동하였다. 1919년 5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李始榮)으로부터 군자금 모집 지시를 받은 같은 고향 출신 김봉원(金鳳源)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5월 김봉원 등 5명과 권총을 휴대하고 5월 30일 평남 성천군(成川郡) 영천면(靈川面) 대평리(大坪里)의 김제린(金濟麟)에게 50원, 박상승(朴相承)에게 100원을 징수하였다. 이후에도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며 독립사상 선전에도 힘썼다. 1921년 6월 22일 강동군 원탄면 표대리(表垈里) 대동강(大同江) 연안에서 미행하던 일제 경찰에게 동료 4명과 붙잡혔다. 1921년 10월 재판 과정에서 “악형으로 진술을 강요당했다”고 폭로하는 동시에 조선인이 독립운동을 하는 당위성을 설파하고, 조선인 부자들의 보신주의를 비판하였다. 1921년 10월 28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강도 등으로 등으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에 자신은 “대한 독립을 희망하여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냈을 뿐, 강도로 규정될 수 없다”고 항변하며 항소하였으나, 1921년 12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고문 후유증으로 1933년 12월 28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