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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朴英善

1899. 12. 24 ~ 1984.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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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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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신흥(新興)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신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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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신민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신민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9년 12월 24일 태어났다. 본적은 함남 신흥군(新興郡) 영고면(永高面) 당복리(塘福里)이며, 출생지는 함흥군(咸興郡) 상기천면(上岐川面) 오로리(五老里)이다. 아명은 천바위[(千岩)]이며, 박진국과 채국화의 장남로 출생하였다. 부친은 천도교 중앙본부 함흥교구장을 지냈다. 어려서 부친이 사준 『유년필독(幼年必讀)』 등을 읽었다고 한다. 1915년 상기면 오로리에 있는 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17년 함흥 북문 안에 있는 기독교 계통의 영생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신흥에서 정재각(鄭在珏)·유동춘柳(東春)·박인수(朴寅洙)·박장원(朴長元)·박두송(朴斗松)·정문조(鄭文朝) 등과 함께 신흥읍을 비롯하여 동고천면(東古川面)·서고천면(西古川面) 주민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3일 오전 9시를 기하여 최한신·이희술 등과 주민 200여 명을 인솔하고 신흥군까지 진출하는 등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일제의 감시망이 강화되자 그 해 4월 13일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5월 15일 지린성(吉林省) 퉁화현(通化縣) 소재 군관양성학교(교장 김승학) 단기 속성부에 입학하여 12월 28일 졸업하였다. 1920년 6월을 전후하여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인이 경영하는 채목공사장(採木工事場)과 광산 기습 작전에 참가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오른손과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기도 하였다. 1921년 흥업단(興業團)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1923년 안투현(安圖縣)으로 들어와 무장 행동을 위한 무기 준비와 둔전제(屯田制) 실시에 착수하였다고 한다. 1926년에는 북만에서 신민부(新民府) 군사부의 별동대 일행을 맞아 신민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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