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길
方圓吉1879 ~ 1929. 9.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대동군 대보면 3.1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대보면(大寶面) 대평외리(大平外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9년 당시 41세인 것으로 보아 1879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2일부터 4일 사이에 대동군 대보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동군 대보면에서는 1919년 3월 2일부터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 학생 이응칠(李應七)은 3월 1일 평양에서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주변 지역으로 만세시위를 전파하라는 임무를 받고 대동군으로 왔다. 이응칠은 우선 대평외리에 위치한 취명학교(就明學校) 직원들과 만세운동에 대해 동의하였다. 교직원들도 이응칠의 취지에 동의하여 취명학교 학생들을 불러 모아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대동군 내에는 이미 경찰서장과 군수의 명의로 ‘한국이 이미 독립되었다’라는 내용의 문서가 각 동리의 면장과 이장에게 전달되고 있어 민심이 더욱 동요하고 있었다. 3월 3일에도 시위가 일어나자 대보면 주민 4백여 명이 참석했고, 3월 4일에는 5백여 명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4일 만세시위가 시작되자 군중들과 함께 대보면 면사무소 앞으로 몰려갔다. 대보면장은 시위대를 진정시키고 해산하라고 권유했으나, 군중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이때 군중들과 함께 면사무소에 들어가 창문을 깨는 등 적극적인 방법으로 일제 식민지배에 항의하였다. 더불어 해산을 종용하던 면장을 비롯한 면사무소 직원들을 만세시위대에 합류시켰다. 이날의 만세시위로 경찰에 붙잡혀 가혹한 조사를 받고,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 가택 침입죄 등을 이유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병중에 있어 궐석재판을 받았다. 1919년 7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았고,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다. 같은 해 9월 13일 고등법원은 원심을 파훼하였으나 면사무소를 습격한 건에 대해서 소요죄를 적용해 가중 처벌의 대상이라며 형량을 그대로 유지하여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