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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섭

朴洪燮

1890. 1. 21 ~ 1937.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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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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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義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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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6)

관련 사건

  • · 의성군 비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6) 1890년 1월 21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비안면(比安面) 동부동(東部洞, 현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6일 경북 의성군 비안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경북의 만세운동은 서울과 평양(平壤)의 만세운동 참여자들이 귀향하여 그 소식을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8일 대구(大邱) 학생단과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났고, 3월 12일 비안공립보통학교(比安公立普通學校) 학생과 주민이 주도한 만세운동 등이 전개되면서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1919년 3월 12일 비안공립보통학교와 비안면 쌍계동(雙溪洞, 현 쌍계리) 주민들의 만세운동이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소강 상태에 빠지자, 임재호(林在虎)·김석근(金碩根)·박후도(朴後度) 등의 애국 청년들과 함께 김석근의 집에서 회합을 갖고 후속 시위를 도모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이튿날인 3월 13일 저녁 8시를 기해 서부동(西部洞, 현 서부리)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거행하기로 합의하고 이에 사용할 태극기 120개를 제작하였다. 거사 당일 만세시위 시작 장소인 서부동 장터로 갔다. 뜻을 같이하여 모여 있던 마을 주민 수십 명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마침 동부동으로부터 서부동 장터를 향해 시위행진을 하던 1백여 명의 군중이 합류하여 연합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의 규모가 커지자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강압적으로 해산하려 하였고, 이 과정에서 주도자 중 한 명인 김석근을 붙잡아갔다. 1919년 3월 13일 의거 후 일제의 검거를 피해 은신하였으나, 임재호 등 주도자들과 함께 상의하여 재차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거사 준비를 서둘렀다. 거사일은 3월 16일 장날을 이용하여 봉기하기로 하였는데, 장날에 운집한 장꾼과 주민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려는 것이었다. 거사 당일 오후 3시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시장에 모인 50여 명의 군중에게 준비한 태극기를 배포하며 ‘독립만세’를 앞장서서 외쳤다. 이어서 동부동을 일주하며 시위 행렬의 선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 군경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자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같은 해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동일한 10월을 받았다. 이에 다시 “만일 일본 민족이 타국의 속박을 받을 때 자주독립을 요구하는 것을 보안법 위반이라고 할 것인가?”라고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그해 5월 29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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