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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래

朴恒來

1861. 6. 28 ~ 1919.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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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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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順天)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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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순천군 순천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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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61년 6월 28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상사면(上沙面) 용암리(龍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7일 전남 순천군 순천읍(順天邑)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평소 한국이 독립할 시기를 엿보다가 파리강화회의 소식을 듣고 또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 ‘독립만세’를 부르짖는 상황이 오자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에게 독립사상을 전파하여 독립을 달성하겠다는 마음으로 순천읍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1919년 4월 7일 오후 1시 순천군 읍내 장터에서 흰 종이 한 장을 샀다. 읍내 남문(南門) 누상(樓上)에 올라가서 장날에 모여든 군중에게 백지를 흔들며 현재 경향 각지에서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르고 있으니 순천에서도 똑같이 만세를 외치자라고 연설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수백 명의 군중이 바로 호응하여 성문 아래로 몰려들었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과 헌병보조원에 붙잡혀 끌려가면서도 끝까지 저항하며 만세를 외쳤다. 1919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던 중, 같은 해 12월 24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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