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용
朴漢用1879. 4. 1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공주군 정안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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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1879년 4월 10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정안면(正安面) 운궁리(雲弓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상득(朴上得)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1일 충남 공주군 정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정안면 만세운동은 지역에서 존경받는 유림이던 석송리(石松里) 이기한(李綺漢)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기한은 1919년 3월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즉시 그 취지에 찬동하여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기한은 이병억(李秉億)과 함께 4월 1일 석송리 주민들을 모아놓고 만세시위에 나설 것을 호소하였다. 이기한의 ‘대한독립만세’ 선창에 따라 수십 명의 주민들이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들은 만세시위 대열을 갖추어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내촌리(內村里)를 경유하고 면사무소가 있는 광정리(廣亭里)를 향해 행진하였다. 이날 운궁리의 다른 주민들과 함께 모범림의 묘목 식수에 동원되어 작업하고 있던 중 석송리 방면으로부터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광정리로 행진하는 200여 명의 시위대와 만나게 되었다. 이들로부터 광정리의 면사무소로 가서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자는 권유를 받고, 곧바로 만세시위 대열에 동참하였다. 최범성(崔範聲)·윤원식(尹元植)·이월성(李月星) 등과 함께 식수 작업을 위해 준비한 지게와 삽 등을 휴대하고 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며 광정리로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가는 길목마다 많은 주민들이 합세하여 광정리에 도착했을 때 8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되었다. 이기한·이병억 등의 지휘에 따라 광정리의 시장으로 가서 일본인 거주지와 정미소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가지고 있던 삽 등의 도구를 이용하여 순사주재소를 습격, 파괴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와 같은 격렬한 만세시위를 보고 받은 공주경찰서는 진압을 위해 10여 명의 순사와 헌병들을 광정리로 급파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광정리에서 전개한 만세시위는 마무리되었는데, 진압 병력이 석송리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이병림(李秉霖)이 일제 경찰의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9월 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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