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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환

朴埰煥

1882. 3. 12 ~ 1962.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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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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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高靈)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고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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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고령군 우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2년 3월 12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우곡면(牛谷面) 도진동(桃津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4월 초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고령군 우곡면 도진동 일대에서는 1919년 4월 6일부터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밤 11시 박재필(朴在弼)을 선두로 하여 마을 주민 30여 명이 우곡면사무소까지 나아가서 만세를 부르다가 해산하였고, 시위 주도자들 일부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틀 후인 4월 8일에 같은 마을에 사는 친척 박기태(朴基太)의 집에서 열린 혼례에 마을 주민들이 모이게 되었다. 이에 재차 시위가 발생할 것을 우려한 일제 경찰 4명이 우곡면사무소 앞에 사람들을 집합시켜 만세운동을 벌이지 말 것을 경고하였다. 일제 경찰이 떠난 이후에도 면사무소에는 다수의 주민이 귀가하지 않고 있었다. 이 기회를 틈타 저녁 7시 20분 무렵 주변 사람 20여 명에게 만세시위를 권유하며, 솔선수범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3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0년 4월 9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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