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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朴昌喜

187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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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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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북청(北靑)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북청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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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북청군 이곡면 3.1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9)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성대면(星垈面) 창성리(昌星里)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47세로 1873년생으로 추정된다. 향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3월 12일 북청군 이곡면(泥谷面) 초리(初里) 흥리촌(興利村)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천도교 교세가 강했던 북청군의 천도교 교구장 김태종(金泰種)은 『매일신보』 기사를 통해 천도교주 손병희(孫秉熙)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체포 소식을 접한 뒤,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한병표(韓炳豹)가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이승국(李承國)과 함께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또한 교단 조직을 이용하여 인근 마을의 사람들을 규합하여 3월 11일의 기도일에 북청읍(北靑邑)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김태종은 3월 10일 밤 일제 헌병대에 붙잡혔다. 1919년 3월 11일, 만세시위를 위해 북청 천도교구실로 모인 천도교인들은 일제 헌병들이 성내로 들어가는 문을 차단하자 남문과 서문 밖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또한 김용완(金溶玩)·이유년(李有年)·김서룡(金瑞龍)·주용길(朱龍吉)·정기수(鄭基洙) 등의 주도로 북청 읍내 일대에서 산발적으로 만세운동을 계속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3월 12일 이곡면 초리의 흥리촌에서 박창욱(朴昌郁) 등 천도교인 여러 명과 함께 마을 사람들에게 만세운동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 일로 한병표·김용완 등 만세운동 주도자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6월 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심이 취소되고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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