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환
朴進煥1888. 3. 2 ~ 1950. 6. 1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진주청년회
- · 진주노동공제회
- · 형평사
- · 신간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진주군 진주면(3.18) 3.1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8년 3월 2일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 진주면(晋州面) 평안동(平安洞)에서 박상호(朴相浩)의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 이명으로 박헌룡(朴憲龍)을 사용하였다. 정미의병, 1919년 만세운동, 신간회 활동에 참여하였다. 진주의 양반 가문 출신으로, 부친이 진주 성내(城內)에서 상업으로 부를 쌓았다. 성년이 된 1907년 정미의병(丁未義兵)이 궐기하자 의병장 유종환(兪宗煥) 부대에 들어가 함안(咸安) 등지에서 의병 전쟁에 참가하였다. 1909년 유종환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하고 부대가 해산하자 귀향하여 가업에 종사하였다. 진주에 설립되었던 민족주의 계열 사립학교 중 하나인 봉양학교(鳳陽學敎)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당시에는 잡화상(雜貨商)을 하고 있었다. 3월 고종 장례식에 참석하러 강달영(姜達永)·김재화(金在華)·정준교(鄭準敎) 등과 함께 상경하였다가 서울의 만세운동을 접하였다. 일행과 함께 독립운동의 취지에 공감하여 진주에서도 이를 실행하기로 하고, 3월 11일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진주로 귀향하였다. 김재화의 집을 비롯한 여러 장소에서 열린 비밀 회합에는 봉양학교 설립자 강상호(姜相鎬) 등 독립운동에 참가하고자 하는 진주지역 지사들이 참가하였다. 거사일은 진주 읍내 장터 장날인 3월 18일로 정하였다. 3월 16일 심두섭(沈斗燮)·정준교와 함께 천전리(川前里, 현 진주시 내동면)의 산속에 위치한 망경대(望京臺)에서 독립선언서와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국권을 회복하여 복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교유문(敎喩文)」 1,000부를 등사하고, ‘조선독립만세’라 적은 깃발과 태극기를 제작하여 3월 17일 동지들에게 배분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정오 무렵 진주교회의 종소리를 시작으로 태극기를 들고 시내를 행진하며 독립선언서를 공중에 살포하였다. 이때 진주 각지에서 온 수많은 사람이 행렬에 가담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본 경찰이 총검과 곤봉으로 해산을 시도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돌을 던지며 저항하였고, 진주경찰서로 몰려가 건물과 집기를 파괴하였다. 오후 4시 경남도청 앞에 이르러 밤 11시까지 시위를 계속하였다. 시위 진압에 나선 일제 경찰과 일본군 헌병 진주파견대는 시위 주도자들에게 잉크를 뿌려 두었다가 만세시위 군중의 수가 줄어드는 해질녘 무렵 검거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이때 붙잡혀 1919년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독립운동은 민족자결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므로 죄가 아니라는 취지로 항소를 제기하였다. 그해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독립선언서 등사가 보안법 위반과 관련된 중대 사안이므로 더 큰 처벌이 필요하다”하여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징역 3년을 받았다. 다시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9월 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됨으로써 징역 3년이 확정되어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복역 중 영친왕(英親王)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 사면에 의해 1년 6월로 감형되어 1921년 3월 6일 풀려났다. 풀려난 이후 진주지역의 유지로서 군민의 이익 도모에 힘쓰며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21년 진주청년회(晋州靑年會)가 확장 개편할 때 임원인 서무부 사교(社交) 직책을 맡았다. 진주지역 내 청년회관·유치원·학교 건립 운동, 1924년부터 시작된 경남도청 이전 반대 운동, 창렬사(彰烈祠) 중건 사업 등에 참여하였다. 1922년 강달영과 조우제(趙佑濟)의 주도로 설립된 진주노동공제회(晋州勞動共濟會)와 후계 조직인 진주농민조합(晋州農民組合), 진주노동연맹(晋州勞動聯盟)의 임원으로 참가하여 당시 진주지역의 지주·소작인 갈등과 임금노동자 문제를 중재하였다. 1924년 10월 12일에는 무산계급의 교육과 생활개선을 목표로 하는 동우사(同友社)를 창설하였다. 당시 강상호(姜相鎬)를 중심으로 활기를 띠고 있던 진주 내 형평운동에도 참가하여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도모하였고, 양반 출신 지주들을 중심으로 한 반(反)형평운동을 진정시키는 데도 기여하였다. 1927년 10월 20일 신간회(新幹會) 진주지회의 회원 투표에서 간사로 선출되어 지역 내 문제 해결과 민족협동전선 유지에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