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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작지

朴作之

1860. 6. 1 ~ 1944.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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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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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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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60년 6월 1일 경북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인량리(仁良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60세의 나이로 영해면(寧海面) 장날에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영덕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최초로 계획한 것은 영덕군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 기독교 북장로회 교회의 조사(助事)였던 김세영(金世榮)이었다. 김세영은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평양으로 가다가 1919년 3월 초순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였다. 이어 고향에 내려와 3월 12일, 친분이 있던 구세군 참위(參尉) 출신 권태원(權泰源)을 만나 영덕 지역 만세운동을 논의하고 계획하였다. 3월 15일 권태원은 병곡면(炳谷面) 송천동(松川洞) 기독교 북장로회 교회 조사 정규하(鄭奎河)를 만나 3월 18일 성내동(城內洞)의 영해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합의하였다. 군중 동원을 위하여 영해면·병곡면·축산면(丑山面)·창수면(蒼水面)에서 영덕 지방의 양반 가문인 권(權)·남(南)·박(朴)·백(白)·이(李) 씨의 5개 성씨(姓氏) 집안과 지방 유지, 기독교인들을 참여케 하였다. 3월 18일 성내동 영해시장에는 장날에 맞춰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각지의 군중 3,000여 명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행진을 하였다. 이들은 영해경찰관주재소 주임 순사인 스즈키 쓰루지로(鈴木鶴次郞)의 해산 명령에도 불구하고, 영해공립보통학교·영해경찰관주재소·영해면사무소 등으로 행진하였다. 나아가 시위대는 기물을 파손하고 순사를 공격하였다. 이때 영해면 시장의 시위에 참가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시장 부근을 행진하면서 행진을 방해하는 순사를 구타하고 순사들의 제복과 패검 등을 빼앗으며 맞섰다. 또한 영해경찰관주재소에 들어가 주재소 건물과 물품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정규하 등과 함께 성내동 시장 시위의 기세를 몰아 다시 병곡면 병곡동에서 시위운동을 계속하고자 인근 도로에 있던 사람들을 다시 규합하여 행진하였다. 병곡동에 도착한 다음 정규하와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여 병곡면경찰주재소와 병곡면사무소 등의 건물을 파괴하고 기물과 장부를 훼손하는 등 적극적인 시위를 이어나갔다. 이 일로 붙잡혀 모진 조사를 거친 후 결국 재판에 넘겨져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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