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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용

朴仁容

1901. 6. 8 ~ 1985.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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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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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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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901년 6월 8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청양면(靑陽面) 읍내리(邑內里, 현 청양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청양군 운곡면(雲谷面) 위라리(位羅里)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운곡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운곡면의 만세운동은 횃불만세운동의 형태로 펼쳐졌는데, 1919년 4월 3일 만세운동 시도가 일본 경찰에게 사전 발각되어 좌절된 후 새롭게 시도된 방식으로 4월 6일과 8일에 2차례 전개되었다. 횃불만세운동은 야간에 산 위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방식으로 일본 경찰이나 헌병이 출동하기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어두운 야간에 전개되었기 때문에 시위 참여자들을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야간에 멀리서도 명확하게 보이는 횃불을 이용했기 때문에 시위의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다른 지역으로 만세운동을 확산시키기에도 용이하였다. 4월 6일 밤 면소재지인 신대리(新垈里)를 중심으로 모곡리(茅谷里)·영양리(永陽里)·효제리(孝悌里)·후덕리(厚德里)·위라리의 운곡면 6개 지역 주민들은 각 마을마다 사전 연락을 통해 동시에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협의하였다. 다만 그 주도자가 누군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밤 위라리 주민들과 함께 마을의 산 위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일본 헌병들은 야간에 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는 산 위로는 올라오지 못하였다. 이들이 만세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하자, 곧바로 해산하였다. 하지만 야간에 출동한 일본 헌병들이 산 위로는 직접 올라오지 못함에 따라 횃불만세시위의 효과가 입증되어 곧바로 2차 시위를 조직하였다. 4월 8일 밤에는 오후 10시부터 제2차 횃불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이때는 운곡면과 비봉면(飛鳳面)의 주민 600여 명이 연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6일 밤과 마찬가지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주변 산 위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는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후 각 마을에 파견된 일본 헌병들의 횃불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검거과정에서 붙잡혔다. 청양헌병분견소의 조사과정에서 2차례 횃불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인정되어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1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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