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화
朴奫和1867. 1. 17 ~ 1940. 8.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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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867년 1월 17일 충청남도 보령군(保寧郡) 주산면(珠山面) 야룡리(野龍里)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이명으로 박대련(朴大連)을 사용하였다. 1919년 보령군 주산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주산면의 만세운동은 증산리(甑山里) 출신의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학생 이종연李(鍾淵, 일명 (李哲源))이 주도하였다. 이종연은 서울의 만세운동에서 학생 전위대로 활동하다가 3월 중순 경 귀향하여 주산면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로부터 만세운동의 계획을 듣고 공감하여 이철규(李哲圭)·임문호(任文鎬) 등과 함께 만세운동 준비에 참여하였다. 이종연·이철규·임문호 등과 협의하여 주산면 시장 장날인 4월 16일에 만세운동을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을 사전에 탐지한 일제 경찰의 경계 강화로 인해 계획을 변경하였다. 이종연 등 동지들과 함께 다음날인 4월 17일 밤 증산리 주렴산(珠簾山) 국수봉(國帥峯)으로 가서 횃불을 밝혀 올리고, 태극기를 세운 뒤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징을 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주렴산에서 울리는 징소리와 함께 ‘대한독립만세’의 구호를 듣고,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속속 만세운동에 합류하였다. 이종연의 지휘에 따라 만세운동에 합류한 주민들과 시위대열을 갖추어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약 2km 떨어진 웅천(熊川) 읍내를 향해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운동의 진압을 위해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이종연·임문호 등 만세시위 주도자들이 대부분 체포되었다. 당초 계획에는 다음 날인 4월 18일에도 야룡리 복개봉(福開峯)에서 만세운동을 전개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날 만세시위에서 주도자들이 대부분 붙잡혀 계획대로 진행할 수 없게 되자, 4월 18일 밤 홀로 복개봉(覆蓋峯)으로 올라가 태극기를 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하는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0일 보령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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