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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복

朴有福

1869. 9. 10 ~ 1919.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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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유복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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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天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천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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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869년 9월 10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수신면(修身面) 복다회리(卜多會里, 현 병천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천안군 갈전면(葛田面)에 위치한 병천시장(竝川市場, 아우내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현장에서 총탄에 맞아 희생당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한 유관순(柳寬順)이 고향으로 돌아와 유중권(柳重權)·유중무(柳重武)·조병호(趙炳鎬)·조만형(趙萬衡)·김상훈(金相訓)·김용이(金用伊)·박봉래(朴鳳來)·김교선(金敎善)·이순구(李旬求) 등과 함께 병천시장의 장날인 4월 1일에 독립만세운동을 거행할 것을 계획하였다. 거사일인 4월 1일 시위 주도자들은 병천시장에서 시장 상인과 오가는 주민들에게 권유하여 500~600여 명의 시위 군중을 모았다. 그리고 오후 1시경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하였다. 그러자 주변의 주민들이 모여 시위 군중은 3,000여 명의 큰 규모로 늘어났다.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병천헌병주재소 일본군 헌병들이 출동하여 만세시위 중지와 해산을 요구하였다. 시위 군중이 불응하며 만세시위를 계속 이어나가자 일본 헌병들은 총을 발포하며 무력 진압에 나섰고,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시위 군중은 일시적으로 흩어졌다가 재집결하여 사망자의 시신을 주재소로 옮겨 헌병들에게 항의하였다. 그리고 격분한 약 1,5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주재소로 몰려들어가 유리창·철조망·건물 등을 파괴하였다. 이에 일본 헌병들이 다시 총을 쏘고 총검을 휘두르며 시위 군중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격렬하게 만세시위에 나섰다가 일본 헌병의 총탄을 피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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