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朴容鎭1888. 4. 14 ~ 1919. 4.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4년 4월 14일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광석면(光石面) 왕전리(旺田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과 4일 광석면 천동리(泉洞里)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의 무차별 사격으로 희생되었다. 1919년 3월 2일 오후 6시경 논산 천도교 교구실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전북 익산(益山)·함열(咸悅) 천도교 교구원 민영순(閔泳純)이 독립선언서 약 40매를 김태호(金泰昊)와 이백순(李伯純)에게 건네주어 충남에서는 논산과 부여(扶餘)에 독립선언서가 처음으로 배포되었다. 이를 계기로 3월 10일 강경(江景)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래 논산과 강경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3월 30일부터는 매일 논산군 내 각지에 독립만세 소리가 이어졌다. 광석면에서는 1919년 4월 3일과 4일 양일에 걸쳐 천동리를 중심으로 왕전리 등 인근 마을 주민 약 200명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마을 주민들과 함께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만세시위 군중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4월 4일 일본 경찰의 무차별 사격으로 천동리 마을 도로에서 총을 맞고 밤 10시경 사망하였다. 이 외에도 7명이 부상당하고, 8명이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독립운동사』 제3권에는 3월 12일 오후 3시 30분경 강경 읍민과 학생 약 100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부르며 논산 읍내로 행진을 하던 중 논산 읍민들이 합세하여 만세시위 군중이 약 1,000여 명에 이르렀을 때, 일본 경찰의 무차별 사격으로 염중오(廉衆五) 등과 함께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광석면의 재적등본에는 “4월 4일 오후 10시에 천동리 도로 위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4월 4일 천동리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진호⋮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