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龍水
朴水1888. 6. 6 ~ 1943. 4. 1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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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4) 1888년 6월 6일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대저면(大渚面) 소덕리(小德里, 현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하는 박용수(朴用水)를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29일 동래군 구포면 구포시장 장날에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구포에서는 3월말부터 윤경(尹涇)·임봉래(林鳳來)·김윤길(金潤吉)·김옥겸(金玉兼)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구포는 낙동강 하류의 포구로 수륙 운송의 중계지였기 때문에 구포시장 장날에는 인근 김해·양산(梁山) 등지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3월 29일 구포시장 장날을 거사일로 정한 주도 인물들은 거사 당일 정오, 미리 준비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1,000여 명의 장꾼들에게 나누어주고 대형 태극기를 흔들면서 시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 일본 경찰이 급파되었고, 김옥겸 등 주도 인물 12명이 붙잡혀 구포경찰관주재소에 구금되었다.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도자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였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끌려간 12명의 인물을 석방시키기 위해 1,200여 명의 시위 군중을 선두에서 이끌고 구포경찰주재소로 향해 갔다. 주먹과 곤봉으로 주재소 유리창과 집기들을 깨트렸고, 돌을 던져 주재소의 판벽을 부수는 등 일본 경찰에 격렬하게 대항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재소 순사와 순사보, 부산헌병분대 헌병 2명에게 상해를 입혔고, 9명의 시위대도 부상을 당하였다. 시위가 격렬해지고 부상자가 나오자 결국 부산에서 급파된 일본 헌병과 경찰이 시위 군중에게 무차별 발포를 시작하였다. 일본 군경의 야만적 진압 작전에 시위 군중은 하는 수 없이 해산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도 인물 42명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다. 모진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져서 1919년 8월 26일 이른바 보안법 및 형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부산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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