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환
朴永煥1896. 4. 18 ~ 1962. 2.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명정학교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명정학교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6년 4월 18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북면(北面) 남산리(南山里, 현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법명(法名)은 우월당(宇月堂)이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날 무렵에는 범어사 부속 명정학교(明正學校)의 학승이었다. 1919년 3월 18일 동래면 서문 부근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켰고, 다음날 동래시장 시위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4일 범어사 출신의 김법린(金法麟)·김상헌(金祥憲) 등에 의해 범어사 내 청련암(靑蓮庵)으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이후 범어사 내의 승려와 지방학림(地方學林), 명정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3월 17일 저녁 청련암에서 명정학교와 지방학림의 졸업생 송별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모인 약 40여 명의 범어사 승려와 학승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바로 행동에 나섰다. 이미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는 1,000여 장씩 준비되어 있었다. 송별회가 끝난 후 동래읍으로 향하였다. 복천동(福泉洞)에 있는 동래포교당에 도착한 것은 18일 새벽 1시 무렵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일본 경찰 20여 명이 들이닥쳐 김영규(金永奎)·김한기(金漢琦) 등 주도자 4명을 끌고가고 나머지는 강제로 해산시켰다. 시위 계획이 실패로 끝났음을 감지하고 동래에서 범어사로 귀가하려 하였으나 도중에 명정학교 학생을 만나 다시 동래로 돌아갔다. 그리고 18일 밤, 40여 명의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학생들과 함께 동래읍 서문 부근에 모여 시위를 시작하였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동래시장을 지나 남문까지 행진하고 자진 해산하였다. 이어서 그날 밤 비밀 모임을 갖고 3월 19일에는 더욱더 대규모로 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19일 오후 5시경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학생들과 함께 다시 동래시장에 집결하여 시위를 전개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과 같은 형량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