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말례
朴又末禮1902. 3. 13 ~ 1986. 12.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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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1) 1902년 3월 13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순천면(順天面) 옥천리(玉川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영자(朴永子)를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광주군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에 거주하면서 수피아여학교(須皮亞女學校) 학생으로, 광주면 읍내에서 벌어진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광주군의 만세운동은 일본과 서울에서 독립선언을 목격한 사람들이 광주로 만세운동에 대한 소식를 가지고 오면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이때 이들과 적극적으로 접촉하면서 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하고 있었던 수피아여학교 교사 박애순(朴愛順)이 수업시간에 신문을 읽어 주고 파리강화회의에서 한국도 독립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하자, 이를 듣고 처음으로 독립을 도모할 의사가 생겨났다. 이후 앞장서서 학생들에게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는 한편, 1919년 3월 8일부터 3월 10일 오전에 이르기까지 같은 학교 학생 양태원(楊泰元)·홍순남(洪順南)·최경애(崔敬愛)와 함께 비밀리에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오전, 박애순이 김강(金剛)으로부터 전해받은 독립선언서 약 50여 장을 전달하자, 이를 홍순남과 나누어 가지고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에게 전달하였다. 이후 수피아여학교 교사인 박애순·진신애(陳信愛)를 비롯하여 학생 20여 명과 함께 학교를 떠나 광주 부동교(不動橋) 아래 작은 장터로 향하였다. 장터에 도착하자 이미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시위를 준비한 주도자들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며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이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세를 외치며 합류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서문통(西門通)을 지나 우체국을 통과하여 구세군지부에 이르기까지 행진하였다. 오후 5시 무렵, 일본 기마 헌병대와 재향군인회 소속 전역 군인을 비롯한 소방대까지 몰려와 시위대를 총칼로 위협하며 강제로 해산시키고, 100여 명을 끌고갔다. 이 때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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