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龍業
朴業1894. 6. 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7) 1894년 6월 3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죽백리(竹柏里, 현 평택시 죽백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원서(朴元西)를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4월 1일 원곡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안성군 원곡면의 만세운동은 4월 1일 원곡면과 양성면(陽城面) 일대에서 일어났다. 3월 1일 이후 전국적인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원곡면 칠곡리에 거주하는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 원곡면 내가천리(內加川里)에 거주하는 이덕순(李德順), 외가천리(外加川里)에 거주하는 이근수(李根洙)·최은식(崔殷植)·이희룡(李熙)龍 등은 원곡면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평소 독립을 희망하던 중 같은 마을에 사는 이양섭李(陽燮)·서병돈(徐炳敦)·정호근(鄭鎬根)의 권유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위치한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인 후, 오후 8시경 횃불을 들고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행진 도중 이유석이 “양성주재소로 가서 순사를 끌어내어 만세를 부르게 하고, 주재소를 부술 터이니 돌을 가지고 가라”고 하여, 군중은 돌을 지니고 갔다. 오후 10시경 양성면 동항리(東恒里)에 위치한 양성경찰관주재소에 도착하여 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 일본 경찰이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이에 불응하고 양성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시위 군중과 함께 갖고 갔던 돌로 주재소 정면 현관을 부수자, 주재소 안에 있던 일본 순사 1명과 순사보 2명이 달아났다. 주재소의 사무실과 순사 주택 1동, 사무용품·서류·가구 등도 불태웠다. 곧이어 군중을 이끌고 동항리 서쪽에 위치한 일본인의 잡화상을 습격하였다. 시위 군중은 잡화상의 앞문을 부수고 상점 안으로 들어가 진열장과 기물 등을 파괴하였다. 이때 잡화상에 돌을 던지고 다른 사람이 집 앞마당에 내던진 가구 중 일부를 불태웠다. 이 일로 붙잡혀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경성지방법원을 관할재판소로 지정하였고, 그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공소를 수리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로 징역 3년(구류 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2년 5월 6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범성⋮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