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연
朴時淵미상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경상남도 부산부(釜山府) 출신으로 생몰년은 확인되지 않는다. 1919년 3월 11일 사립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의 교사로 부산부 좌천동(左川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후 3월 2~3일경 기독교계 인사들에 의해 독립선언서가 부산과 마산 지역으로 전달되었다. 또 서울의 학생 대표인 학생단(學生團)이 부산상업학교, 동래고등보통학교 등의 학생 대표들에게 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이 같은 움직임은 부산 각 지역의 학교로 확대되어 만세운동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부산지역 최초 만세시위가 일어난 좌천동의 일신여학교는 그 중심에 있었다. 일신여학교 만세시위는 이 학교 교사였던 주경애(朱敬愛)가 부산상업학교 학생들과 부산지역 만세시위를 협의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교사로 재직하던 중 주경애의 권유를 받고 만세시위 준비에 동참하였다. 만세시위에 필요한 태극기는 3월 10일 밤, 학교 기숙사에서 고등과 학생 김응수(金應守)·송명진(宋明進)·김순이(金順伊) 등 학생 11명이 은밀히 제작하였다. 거사일인 3월 11일 주경애와 함께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을 이끌고 밤 9시경부터 행동을 개시하였다. 전날 학생들이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기숙사를 뛰쳐나와 만세를 부르고 좌천동(佐川洞) 거리를 누비며 시위를 전개하였고, 주변의 군중들이 동참하였다. 삽시간에 수백 명으로 늘어난 학생과 군중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2시간 이상 시위를 전개하였다. 도심 한복판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일본 군경이 즉각 출동하여 무자비한 진압과 함께 주도자와 가담자를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시위대는 해산할 수밖에 없었고, 다수의 교사와 학생들이 체포되었다.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므로 검거망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일본 군경에 붙잡힌 후 부산주재소에 갇혀 모진 조사를 받고 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범성⋮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