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봉
朴壽奉1909. 8. 6 ~ 1948. 2.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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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0) 1909년 8월 6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북일시면(北一始面) 운암리(雲岩里, 현 전남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한기(朴漢己)·박한동(朴漢東) 등을 사용하였다. 1932년 영암군 덕진면(德津面) 소작쟁의에 참가하였다. 1932년 3월 문사훈(文士勳)·신용주(愼鏞周)·신용점(愼鏞點)·박유성(朴裕成) 등과 함께 덕진면 운암리에서 소작권 이동이 빈번한 일에 대해 성토하였다. 3월 22일 밤 청년회관에서 회원 수십 명을 모아서 소작권 이전 방지 대책에 대해 협의하였다. 다음 날인 3월 23일 청년 회원 수십 명과 함께 최근에 소작권이 이전된 소작지로 가서 새로운 소작인이 모내기를 하지 못하도록 막고 이전 소작인들을 계속 소작시키게 할 것을 요구하였다. 1932년 6월 4일 최판옥(崔判玉)·김판권(金判權)이 덕진면 영보리(永保里) 영보정(永保亭)에서 청년 회원 70여 명을 규합하여 산유회(山遊會)를 열었을 때 참여하였다. 이 자리에서 최판옥·김판권은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소작 문제와 관련해서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과 신구 소작인의 집으로 가서 소작권 이동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 할 것을 주장하였다. 여기에 찬성하여 동지들과 함께 보자기로 깃발을 만들어 앞세우고 산을 내려와 덕진면 운암리와 백계리(栢溪里)에 있는 신구 소작인들의 집으로 가서 그들을 꾸짖고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이 과정에서 동지들과 함께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노동가를 합창하였다. 이 일로 함께한 동지 100여 명과 함께 영암경찰서에 구금된 뒤 장흥검사국을 거쳐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예심에 회부되었다. 1933년 6월 2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예심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 등으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의 재판에 부쳐졌다. 그 해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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