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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송

朴義松

1886. 7. 2 ~ 1921.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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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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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안주(安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안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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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6년 7월 2일 평안남도 안주군(安州郡) 입석면(立石面) 입석리(立石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안주면 칠성리(七星里)에 거주하며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안주면 장로교 동예배당(東禮拜堂) 교도로서, 3월 1일 안주군 안주면 읍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안주읍 동예배당의 목사는 후일 장로교의 중진이 되는 김화식(金化湜)의 아버지 김찬성(金燦星)으로, 목회에 종사하는 동시에 교인들에게 민족의식을 앙양시키고 있었다. 동예배당을 다니며 평소 민족의식을 함양하였고,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정의·인도를 주창하고 민족자결론이 발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장로교를 통해 만세운동이 계획되고 있다는 소식이 김화식을 통해 전해졌다. 김화식은 신뢰할 수 있는 10여 명을 불러 모아 안주면 읍내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여기에 김병제(金炳濟)·김병건(金炳乾)·이인택(李仁宅)·전성걸(全聖杰)·전예순(全禮淳)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김화식을 통해 독립선언서를 미리 접하고, 이를 등사·배포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동지들과 함께 근처 인가에서 독립선언서 1만여 장을 등사하였다. 거사일을 3월 1일 안주면 읍내 장날로 정하고, 독립선언서를 미리 안주군 각 지역에 배부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일 오후 5시, 김화식·김찬성 등 주도자들과 함께 안주면 읍내 서문 앞으로 갔다. 동예배당 신도 수백 명과 읍내 장날을 맞아 나온 인근 지역 주민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이곳에서 청년 대표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군중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 곳곳을 행진하였다. 일본 헌병은 처음에는 이를 전도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두었으나, 이후 독립선언서를 보고 독립운동임을 깨닫고 황급히 주도자 검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안주헌병분대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0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다시 “이 좋은 기회를 맞아 자유 독립의 희망에 대해 세계 공법에 따라 동정을 받으려는 것은 하등의 죄가 아니므로 속히 무죄 방면하라”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경성감옥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이 악화되어 1920년 6월 5일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이듬해인 1921년 10월 2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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