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성
朴宜成1892. 7. 18 ~ 1979. 4.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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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92년 7월 18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월암리(月岩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춘일(朴春一)을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금마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3월 6일 홍성군에도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3월 18일 광천면(廣川面) 옹암리(甕岩里) 오인섭(吳仁燮) 집에서 독립선언서 50매가 등사되어 광천리와 옹암리 민가에 배포되었다. 이후 민영갑(閔泳甲)·이재만(李載萬) 등은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 집에서 연극 공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이용해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4월 1일 밤 8시경 민영갑 등은 연극을 관람하기 위해 온 마을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을 권유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주민들은 호응하며 만세를 외쳤다. 4월 4일 만세운동이 재개되어 금마면·홍북면(洪北面)·홍주면(洪州面)·홍동면의 24개 마을 주민들이 산상(山上)에 화톳불을 올리고 만세를 외쳤다. 홍성경찰서 경찰들이 홍성수비대 병력과 협력하여 만세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주민 10명이 사망하고, 주요 인물 5명이 붙잡혔다. 하지만 만세운동은 4월 5일로 이어졌다. 홍동면 신기리 주민 100여 명이 금마면 퇴뫼산과 연결된 만경산(萬頃山) 산상에 모여 화톳불을 피우고 만세를 외쳤다. 일본군 5명이 발포하여 사망자 2명과 부상자 2명이 발생하였고, 시위 군중은 해산하였다. 금마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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