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양
朴應陽1871. 5. 27 ~ 1926. 7.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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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7) 1871년 5월 27일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금서면(今西面) 특리(特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산청군 산청면 읍내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부상당하였다. 1919년 산청군의 만세운동은 자료로 확인되는 것만 군내 각 지역에서 6차례 발생하였다. 이 중 3월 22일 2,000여 명이 모인 읍내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대규모 군중이 모인 이유는 3월 19일 신등면(新等面), 3월 21일 단성면(丹城面) 만세시위와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단성면 시위에서는 일본군 헌병들의 발포로 무수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소식은 삽시간에 산청군 전체로 퍼졌고, 산청 읍내 장날인 3월 22일 대규모 만세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3월 22일 읍내 만세시위는 원래 오명진(吳明鎭)·민영길(閔泳吉)·신영희(申永熙) 등이 결사대를 조직하여 거사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산청면사무소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선언서와 결의서를 등사하는 등의 만세시위를 준비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모두 일본군 헌병대에 검거되었다. 하지만 3월 22일 산청면 읍내 장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정오경부터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이때 선두에 서서 시위 군중을 이끌고 읍내 시장을 누비면서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 일본군 헌병과 수비대 10여 명이 출동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폭력적으로 시위를 진압하기 시작하였고, 부상자가 속출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군경의 군도에 오른쪽 귀와 팔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같이 시위를 주도하던 금서면 덕촌리(德村里)의 민치방(閔致方)도 일본군의 총검에 부상당하였다. 다행히 붙잡히지는 않았으나, 큰 부상의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26년 7월 3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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