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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구

朴容九

1884. 5. 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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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용구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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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화천(華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화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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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84년 5월 9일 강원도 화천군(華川郡) 상서면(上西面) 봉오리(峰吾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화천군 상서면의 만세운동을 이끈 인물들은 같은 마을에 사는 이창선(李昌善)이었다. 당시 마을 구장으로 3월 27일 뽕나무 묘목 심는 것을 논의하기 위하여 이준극(李俊極)의 집에서 마을 회의가 열렸을 때, 마을 주민들에게 “각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세운동에 찬동하여 내일 28일 화천읍 장날을 이용하여 다중을 규합하여 만세를 부르자”고 제의하였다. 이에 김광필(金光弼) 등이 적극적으로 찬성하였고, 같은 자리에 있던 심경지(沈敬之)·이재영(李載榮)·김정구(金鼎九) 등의 동의를 얻어냈다. 이들과 함께 이튿날인 3월 28일 화천 읍내에서 장이 서는 것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하고 각자 지역을 나누어 주민들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이때 김광필과 함께 상서면 다목리(多木里)를 맡아 주민들에게 만세운동 참여를 권유하기로 하였다. 또한 이창선·김광필과 옥양목으로 대형 태극기를 만들고, 주민들에게 나누어 줄 통고문을 작성하며 비밀리에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28일 거사 당일, 주도자들과 함께 새벽에 뒷산으로 가서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부른 후 태극기를 앞세우고 선두에 서서 출발하였다. 봉오리·다목리·파포리(巴浦里) 주민들은 몽둥이와 낫과 괭이를 들고 뒤를 따랐다. 시위대를 이끌고 상서면사무소 앞에 이르렀을 때는 1,000여 명의 군중들이 운집해 있었다. 군중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면사무소에서 만세운동을 시작하였고, 면장과 서기에게도 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시위대의 요청을 이들이 거부하자 앞장서서 면장 정종하(鄭鍾夏)와 서기를 끌어내고,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 유리창을 파괴하는 등 격렬하게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구운리(九雲里)·논미리(論味里)·신풍리(新豊里)·신대리(新大里)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합류하면서 시위대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났다. 정오 무렵 시위대와 함께 읍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신풍리 앞 주막거리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일본 군경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급습하였다. 일본 군경의 시위대를 향한 무차별적인 발포로 현장에 있던 주민 4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주도자와 적극 참여자 등을 체포하였는데,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7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을 받고 정식 재판에 회부되어, 9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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