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묵
朴永黙1881. 5. 5 ~ 1970. 2.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일신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일신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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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1년 5월 5일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 고전면(古田面) 성천리(城川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919년 4월 6일 고전면 주교리(舟橋里, 현 고전면 고하리) 주교리시장(배다리장터)에서 펼쳐진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같은 마을의 이종인(李宗仁)·정상정(鄭相正)·정의용(鄭宜鎔) 등 뜻을 같이하는 동지 33인을 모아 일신단(一身團)을 조직하고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일신단은 “오직 한 뜻, 한 가지, 한 몸처럼 뜻을 모아 일생을 바쳐 투쟁한다”는 의미였다. 4월 6일 배다리장터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일신단 동지 정재기(鄭在基)에게 독립선언서를 구해오도록 하였다. 그 과정에서 정재기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지만, 비밀이 누설되지 않아 시위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919년 4월 6일 거사 당일 장꾼으로 가장하고 시장으로 잠입한 후 동태를 살피다가 오후 1시 40분경 미리 만들어 놓은 태극기를 들고 단상에 올라 의거의 취지를 설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배다리장터는 인근 각지에서 장꾼들이 모여드는 규모가 꽤 큰 시장이었다. 시위가 벌어진 장날에는 고전면 주민은 물론 인근 양보면良(甫面)·진교면(辰橋面)·금남면(金南面) 주민들이 모여들었고, 1,000여 명이 넘는 군중이 만세운동에 합세하였다. 선두에 서서 군중을 이끌며 시위를 전개하고 있을 때 일본 경찰 1명과 한국인 경찰 1명, 일본 헌병 3명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였다. 일신단원들이 달려들어 총검을 빼앗았고, 폭력을 가하여 헌병 2명과 경찰 1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에 일본군 수비대가 급히 파견되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다음 날인 4월 7일 아침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을 체포하기 위해 일본 헌병 20명과 경찰 10명이 성천리 지소마을에 총을 난사하며 몰려들었다. 미리 부녀자와 아이들을 마을 뒷산으로 대피시키고 마을 사람들의 피해를 우려하여 자진해서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6월 4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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