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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순

朴愛順

1896. 12. 23 ~ 1969.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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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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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木浦)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목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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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6년 12월 23일 전라남도 목포부(木浦府) 양동(陽洞)에서 태어났다. 전남 광주군(光州郡)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의 수피아여학교(須皮亞女學校)를 제1기로 졸업하였으며,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 중 광주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나주(羅州) 사람 김복현(金福鉉)이 서울에서 독립선언서 수천 매와 격문 약 100장, 국민대소집청원서(國民大召集請願書) 약 10장을 전남에 배포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3월 6일 양림리의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김강(金剛)과 의기투합하여 같은 학교 교사 최병준(崔丙俊)·송흥진(宋興眞)·서정희(徐廷禧)와 함께 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강으로부터 수피아여학교의 학생들을 만세시위에 동원하는 역할을 부탁받고, 이를 담당하였다. 숭일학교는 송흥진·최병준이 맡기로 하였으며, 인쇄물 교부와 학생 모집과 지도를 계획하였다. 그리고 10일 광주 큰 시장에서 김복현이 독립선언서의 취지를 연설한 뒤 광주 시내를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거사가 임박하자 김강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포함한 인쇄물을 전달받아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에게 배포하고, 3월 10일 오후 3시 30분에 만세시위를 결행할 것을 알렸다. 학생들에게 『매일신보(每日新報)』의 기사를 읽어주며 전국 각지의 독립운동 현황을 전하고, 파리 만국강화회의에서 조선의 독립을 승인할 것이며 현재 전국에서 독립운동을 개시하고 있으니 우리도 이에 동참하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고 설득하였다. 3월 10일 오후 3시경 1,000명 이상의 군중이 부동교(不動橋) 아래 작은 장터로 결집하였다. 여기에 수피아여학교 학생 20여 명과 함께 참석하였다. 양림리 방면에서는 수피아여학교 외에 송흥진이 이끄는 숭일학교 학생들과 기독교인들이 합류하였다. 군중은 서문통(西門通)으로, 농업학교 학생들은 북문통(北門通)을 거쳐 합류하였다. 주도자들이 독립운동의 개시를 선언하자,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을 이끌고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를 불렀다. 시위 행렬이 광주지방법원을 지나 우체국 앞에 이르자 무장한 일본군 헌병대가 출동하여 100여 명을 체포하였으며, 오후 4시 30분경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모진 조사를 받은 후 기소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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