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朴星嬉191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시천교 경성청년회
- · 시천교학생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시천교 경성청년회
- · 시천교학생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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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1911년 평안남도 평양부(平壤府) 경상동(慶尙洞)에서 태어났다. 한자를 달리하여 박성희(朴星姬)로도 알려져 있다. 1930년 경성여자상업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동맹휴학에 참여하였다. 학업을 위하여 서울에 와서 시천교(侍天敎) 청년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29년 2월 10일 개최된 시천교 경성청년회(京城靑年會)에서 문태섭(文泰燮)·박정석(朴貞錫)과 함께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시천교학생회(侍天敎學生會)에서 1929년 7월 하계순회 강연회를 열기로 계획할 당시 남부 지방을 담당하는 등 계몽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 시위와 동맹휴교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이에 참여하였다.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민족 차별을 경험하던 학생들은 그 해 11월 29일 전남 광주에서 학생시위가 일어나자 곧바로 이에 호응하였다. 시위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서울에서는 같은 해 12월 초부터 격문이 뿌려졌고, 12월 5일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각급 중등학교와 전문학교에서 시위가 조직되었다. 경성여자상업학교에서도 같은 해 12월 11일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는 등 시위가 벌어졌다. 학교 당국은 시위를 막기 위해 임시휴교에 들어갔다. 1930년 1월 초 각 학교가 개학을 하자 다시 시위를 계획하기 시작하였다. 여학교 대표들도 모여 시위 계획을 논의한 끝에 같은 해 1월 15일 각 학교에서 일제히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경성여자상업학교에서도 박계숙(朴桂淑)이 대표자로 참여하였다. 경성여자상업학교에서는 1930년 1월 16일에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벌어진 시위와 동맹휴교에 가담하였다. 이날은 마침 임시 휴교로 연기되었던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학생들은 수업이 시작되자 시험을 거부하는 의미로 백지 답안을 제출하였다. 이어 그날 오전 11시경에는 전교생이 밖으로 나와 함성을 지르며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유리창이 깨지고 학생 10여 명이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학생 24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종로경찰서에서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경찰범처벌규칙(警察犯處罰規則)’의 적용을 받아 구류 20일을 받았다. 1929년 1월 29일 가출장(假出場)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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