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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용

朴文鎔

1882. 1. 15 ~ 1929.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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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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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寶城)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보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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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불변단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조선독립군사령부
  • · 암살단

포상 정보

  • · 독립장(1980)

관련 사건

  • · 암살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80) 1882년 1월 15일 전라남도 보성군(寶城郡) 겸백면(兼白面) 사곡리(沙谷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원(珍原), 이명은 박환(朴桓)·박해춘(朴海春)이다. 임진왜란 시 의병장 박광전(朴光前)의 11대 후손이다. 어려서 한학과 신학문을 배웠으며 겸백면장을 지냈다. 경술국치 이후에도 겸백면장으로 있다가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고 1913년 12월 8일 공금과 세금 300여 원을 소지하고 고향을 떠났다. 1919년 7월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잦아들던 만세운동의 고취, 국내 소통을 위한 행정 연락망의 조직,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단체 결성 등에 관해 논의하였다. 나아가 이들의 권유로 톈진(天津) 불변단(不變團)에 참여한 뒤, 안창호(安昌浩)와 불변단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제2차 만세시위 추진에 앞장섰다. 불변단의 부단장과 의사부장(議事部長) 그리고 총무를 맡았고, 그해 10월 31일 반포할 계획인 ‘대한민족대표’ 명의의 독립선언서에도 서명하였다. 같은 해 9월 25일 안창호의 지시로 임시정부 전라남북도 특파원으로 국내에 파견되었다. 주된 임무는 10월 31일로 예정된 제2차 만세시위의 준비와 실행이었다. 귀국 후 서울에 상주하며 명제세(明濟世) 등 불변단원들과 제2차 만세시위를 추진해 갔다. 자동차로 ‘대한민족대표’ 명의의 독립선언서와 「남녀학생에게」, 「상업에 종사하는 동포에게」 등 ‘이동녕(李東寧) 내무총장’ 명의의 포고문을 살포하면서 만세운동을 전개키로 계획되었지만, 주도자들이 붙잡혀 좌절되었다. 하지만 임시정부 국내특파원의 노력과 비밀결사 조선민족대동단·대한독립애국단·대한국민회 등의 참여로 10월 31일을 전후하여, 서울과 평양을 비롯한 의주(義州)·선천(宣川)·정주(定州)·영변(寧邊) 등지에서 산발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1920년 1월 서울에서 한훈(韓焄)을 만나, 다음 달 함께 상하이로 가서 이동휘(李東輝)·안창호·김철(金澈) 등 임시정부 요인들을 방문하였다. 이를 계기로 독립운동 방략도 군사 활동, 무력투쟁 노선으로 바뀌었다. 한훈은 한말 홍주의병에 참여하고 1910년대 광복회 활동에 가담하여 무장투쟁을 주장하던 인물이었다. 같은 해 4월 초 국내로 돌아와 한훈과 군사기관 조직에 착수하여, 4월 말경 독립군 모집과 군자금 모금, 총독부 수뇌와 친일 부호 및 밀정 처단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독립군사령부를 결성하였다. 조선독립군사령부 비서장으로 독립군 모집과 군자금 모금을 담당하였다. 권총과 탄환 등 무기는 임시정부의 협조로 마련하여 한훈이 안둥(安東, 현 단둥)에서 배편으로 의주로 들여와 서울로 반입하였다. 이어서 군자금 모금에 나서, 같은 해 5월 한훈과 전남 광주군(光州郡) 본촌면(本村面) 일곡리(현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의 부호 노진영으로부터 1,000원을 모으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와 함께 암살단과 합동하여 미국의원단이 남대문역에 도착하는 같은 해 8월 24일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나올 조선총독부 수뇌와 친일파 거두들을 공격키로 하였다. 암살단은 1920년 4월 대한군정서 국내 파견원인 김동순(金東淳)이 서울로 들어와 김상옥(金相玉)·이돈구(李敦九)·신화수(申華秀)·윤익중(尹益中) 등과 결성한 비밀결사였다. 직접 행동은 김동순과 김상옥을 비롯한 암살단에서 맡았고, 무기는 독립군사령부가 제공하였다. 거사와 동시에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앞세우고 시위운동을 전개하면서 암살단 취지서와 경고문을 살포키로 하였다. 그러던 중 비밀이 탄로나 한훈과 함께 붙잡혔다. 이른바 ‘암살단 사건’으로 불리는데, 1921년 11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징역 7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김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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