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97. 3. 15 ~ 1936.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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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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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97년 3월 15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산내면(山內面) 송백리(松柏里)에서 태어났 후일 대구(大邱)로 옮겼다. 본관은 밀성 이다. 호는 경암(敬庵)이며, 이명은 손허(孫許)·손진현(孫振顯)이다. 17세까지 한문을 공부했고, 1914년부터 1921년까지 산내면 서기로 재직했다고 하며, 이후 농업·잡화상·세탁업 등에 종사하였다. 그 사이 만주로 가서 1927년 4월 신민부 의 군자금 모집원으로 밀파되었다고 한다. 1927년 9월경 대구에서 남만주 지역 독립운동단체 참의부(參議府)의 참의장인 윤세용(尹世茸)의 아들 윤창선(尹昌善)을 만나, 같은 해 12월 윤창선이 밀양의 윤치백(尹致伯)·손봉현(孫鳳鉉)·김홍규(金弘圭)과 합작하여 밀양군 단장면(丹場面) 사연리(泗淵里)의 자산가 김태진(金泰鎭)을 속여 3천원을 받아내는 데 협력하였다. 윤창선은 6년 간 옥고를 겪고 이제 막 출옥한 사촌형 윤홍선(尹弘善)을 만주로 데려갈 목적으로 대구에 와 있었다. 또 윤창선의 소개로 신민부의 무장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위한 이주 자금 확보에 부심하고 있던 손양윤(孫亮尹), 전 광복단원 신현규(申鉉圭), 군자금 모집을 위해 밀입국해 있던 정의부(正義府) 제2구 구장 이병묵(李丙黙)을 만나 동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부호층을 상대로 군자금을 거두어 만주로 이주해서 신민부와의 연계 하에 무장독립운동을 벌이기로 서로 약속하였다. 1928년 1월 초순 윤창선이 '신민부에 자금 전달 및 군자금 모금용 권총 매입' 등의 목적으로 매제(妹弟)인 이병묵과 만주에 다녀올 때 동행하여, 안둥현(安東縣) 일대를 둘러보고 10일 만에 대구로 돌아왔다. 그 직후인 1월 19일 밤 손양윤·신현규와 경북 칠곡군(漆谷郡) 왜관면(倭館面) 매원리(梅院里) 이상기(李相琦)의 집을 급습하여 140원을 받아냈다. 이어서 4월 15일 밤에 손양윤·이병묵·신현규와 경북 경산군(慶山郡) 남산면(南山面) 경동(慶洞)의 김두남(金斗南) 집을 찾아가 권총과 폭음탄으로 위협하고 830원을 받아냈다. 손양윤은 그 중 400원을 이병묵에게 신민부로 보내도록 지시하고, 나머지 금액은 신현규에게 맡겨 관리토록 하였다. 1928년 7월 말 윤치백의 지인 서모(徐某)의 밀고로 수배되었고, 그 해 11월 8일 대구 경찰에 붙잡혀 이른바 유가증권·사문서 위조죄, 사기죄,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기소되었다. 1929년 9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겪던 중, 1936년 8월 2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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