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현
孫鳳鉉1894. 3. 11 ~ 1969. 7.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민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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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1894년 3월 11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君) 상동면(上東面) 가곡리(佳谷里)에서 아버지 손진옥(孫振玉)과 어머니 황유인(黃柳仁) 사이의 2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성(密城)이고, 호는 승휘(昇徽)이며 이명은 손말봉(孫末鳳)이다. 소년기에 서당에서 한문과 경서를 배웠고, 그 후 한의원 보조원으로 일하면서 의술을 익혔다. 19세 때 밀양군 단장면(丹場面) 사연리(泗淵里) 김태진(金泰鎭)의 장녀 태동(台童)과 결혼하고 한약방을 경영하였다. 1927년 10월 유사종교 '해원도(解怨道)'의 밀양지부장을 자처하는 윤치백(尹致伯)의 종용으로 함께 대구(大邱)로 가서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윤세복(尹世復)의 아들 윤홍선(尹弘善)과 조카 윤창선(尹昌善)을 만났다. 윤홍선은 1921년 서울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 중 붙잡혀 6년간 옥고를 겪고 출옥한 상황이었다. 윤창선은 사촌형인 윤홍선의 만주 귀환을 돕고자 환런현(桓仁縣)에서 대구로 들어와 있었다. 이들에게 장인 김태진으로부터 군자금을 받아낼 계획을 들려주고 방책을 밀의하였다. 1927년 12월 김태진의 장남이자 자신의 처남인 김병연(金秉淵, 본명 김용출(金龍出))을 서울로 유인하여 '해원도 교주(敎主) 면담'을 핑계로 윤홍선에게 소개하고 만주행에 동반토록 하였다. 이후 김태진과 김용출의 도장을 새겨 윤창선에게 넘겨주었고, 윤창선은 필적을 위조하여 김용출 명의로 발행된 약속어음을 김태진에게 보여주며 기일 내 지불을 요구하였다. 김태진이 응하지 않자 장인을 찾아가 처남의 3,000원 차용은 사실이라고 허위증언하며 지불을 재촉하였고, 장인의 친지인 김홍규(金弘圭)도 설득에 나서도록 하였다. 이에 김태진이 대구로 윤창선을 찾아가 3,000원을 지불하자, 그 중 1,700원을 신민부(新民府) 납부 및 권총구입 명목으로 윤창선이 수령하였고, 나머지 금액에서 400원씩을 윤치백과 나눠 갖고 김홍규에게도 380원을 주었다고 한다. 1928년 7월 31일 윤치백의 지인 서모(徐某)의 밀고로 서울 태평정(太平町) 2가의 삼통여관(三通旅館)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이른바 유가증권·사문서 위조죄, 사기죄,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기소되어, 1929년 9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31년 1월 10일 가출옥하여, 대종교(大倧敎) 총본사(總本司)가 있는 만주 지린성(吉林省) 닝안현(寧安縣)의 둥징청(東京城)으로 건너가 1941년까지 거주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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