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광
朴喜光1901. 2. 15 ~ 1970. 1. 2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독립장(196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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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68) 1901년 2월 15일 경상북도 선산(善山, 현 구미시 선산읍)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이명으로 박상만(朴相晩·朴相萬)을 사용하였다. 아버지는 박윤하(朴允夏)이고 어머니는 장경춘(張敬春)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남만주 류허현(柳河縣)으로 이주하였다. 1924년 싱징현(興京縣) 황대가구(黃帶家溝)에서 김명봉(金鳴鳳)·박창근(朴昌根)·김광추(金光秋)를 비롯한 동지들과 의용군 제5중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5월 27일 싱징현을 출발하여, 6월 1일 김광추와 함께 부일(附日)단체인 푸순현(撫順縣) 조선인민회(朝鮮人民會) 서기 정갑주(鄭甲周)를 처단하였다. 6월 4일에는 펑톈(奉天)으로 이동하여, 6월 7일 펑톈 정정(淀町) 8번지의 전 보민회(保民會) 고문 최정규(崔晶圭)의 집에서 김명봉·김광추와 전 보민회 싱징현지부 서기를 처단하였다. 이어서 대서관(臺西關)에 있는 조선요리점 금정관(金井館)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가 펑톈성 경무서에 붙잡혔다. 1924년 6월 17일 일제에 인도되어 일제 펑톈총영사관 경찰서로 압송되었다. 김병현(金炳賢)·윤영기(尹永基)·신명구(申明球)와 살인, 강도로 예심을 거쳐 8월 19일 관동청감옥 다렌분감(大連分監)으로 압송되었다. 1925년 3월 18일 관동청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여 5월 22일부터 1주일간 재판부·변호인들과 푸순과 펑톈에서 현장 조사를 실시하였다. 1926년 7월 21일 사형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고 감형이 되어 1943년 3월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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