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희
南重熙1873 ~ 1945. 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민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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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5)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결성면(結城面) 덕우리(德隅里) 출신이다. 중국으로 이주한 시점은 알려지지 않지만 중국 지린성(吉林省) 웨이허현(葦河縣) 스토우허즈(石頭河子)에 거주하며, 1928년 신민부(新民府) 경무부장(警務部長)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1928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을 받을 당시의 『동아일보』 보도 기사에 따르면 55세로 1873년생으로 추정된다. 김좌진(金佐鎭)과 같은 고향 출신으로, 함께 독립군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1928년 (음)1월 초를 기해 중동철도(中東鐵道) 스토우허즈 인근의 한인 마을에서 신민부 총회가 개최되었다. 정보를 입수한 하얼빈 주재 일본총영사관 경찰서 다카노(高野)·오카지마(岡島) 등 두 순사부장과 10명의 순사대는 중국 경찰 32명의 지원을 받아 1월 24일 새벽 한인 마을을 포위하였다. 다음날인 25일 새벽, 일제 경찰은 한인 가옥 17호와 신민부가 경영하는 소학교를 수색하여 간부들이 체포될 때, 함께 붙잡혔다. 이때 함께 붙잡힌 인물은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 김혁(金赫), 경리부와 민정부 심판부장 유정근(俞政根), 별동대원 황처준(黃處俊), 문화부장 이원학(李元學), 별동대장 윤영순(尹永順), 경제부장 김봉훈(金鳳壎), 민사부장 김윤희(金允熙), 지방조직위원장 박광원(朴光遠) 등이었다. 권총 탄환 80여 발과 태극기, 상하이(上海), 광둥(廣東)지역의 독립운동단체와 연락한 문서, 미국 하와이의 독립운동 단체가 발행한 신문, 러시아의 문서 등도 압수당하였다. 1928년 3월 12일 신의주(新義州)경찰서로 이송되었고, 4월 4일 신의주지방법원 검사국에 회부되어 예심을 거쳐 1929년 6월 1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7월 2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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