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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오기

朴伍基

1902. 2. 10 ~ 1945.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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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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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高興)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고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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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902년 2월 10일 전라남도 고흥군(高興郡) 고흥면(高興面) 율치리(栗峙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광주군(光州郡)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에 거주하며 숭일학교(崇一學校)에 다녔고, 3월 10일 광주 읍내에서 발생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광주군의 만세운동은 일본에 유학 중이던 정광호(鄭光好), 서울에 유학 중이던 김범수(金範洙) 등이 독립선언의 소식을 접하고 광주로 내려오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기독교 목사인 김철(金鐵)을 비롯하여 남궁혁(南宮爀)·김강(金剛)과, 숭일학교 교사 최병준(崔丙浚), 수피아여학교(須皮亞女學校)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3월 10일의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거사 전날인 3월 9일, 만세운동의 소식을 접한 광주농업학교(光州農業學校) 학생들은 숭일학교를 찾아가 만세운동의 시일이 전해지면 알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3월 10일 오후 2시 30분경, 광주의 작은 장날을 맞아 부동교(不動橋) 아래로 갔다. 여기에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약 1,000여 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학생들과 함께 준비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장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군중들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누문리(樓門里) 일대에서는 광주농업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시위대가 시내로 행진해 와 합류하였다. 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만세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를 행진하였다. 북문 밖 조합자동차사무소 앞에 도착하여 시위대의 규모가 더욱 늘어나자, 오후 5시경 군중들과 함께 우체국을 향하여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우체국 앞에 도착하자 일본 기마 헌병대와 재향군인회 소속 퇴직 군인들이 달려들어 폭력을 사용하여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100여 명을 체포하였다. 이때 일본 헌병에게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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