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화
朴英華1880. 1. 13 ~ 1952. 3.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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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6) 1880년 1월 13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우곡면(牛谷面) 도진동(桃津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도진동에서 노경익(盧敬益)의 고용인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던 중, 4월 6일 도진동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6일 일어난 도진동 만세시위는 우곡면 야정동(野亭洞)에 살던 박재필(朴在弼)이 찾아오면서 비롯되었다. 박재필은 국내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고령군이 동참하지 않는 것은 면목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만세시위를 주도할 것을 제안하였다. 박재필의 제안에 적극 찬성하며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고, 시위를 위한 마을 주민 동원 역할을 맡았다. 이날 박재필은 나무 나팔을 불며 동네를 순회하여 사람들에게 만세시위를 알렸다. 이날 오후 9시경 김시원(金時元)·김구범(金具範)·박경회(朴景會)·박성근(朴成根)·구갑출(具甲出)·정점석(鄭点錫) 등 마을 냇가에 집합한 주민과 함께 시위대열을 형성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마을을 행진하였다. 오후 12시경에는 시위행렬과 함께 우곡면사무소에 이르러 만세를 연호하였다. 그러나 면장이 나와서 시위대를 설득하여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4월 28일 ‘은사령’으로 감형받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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